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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소설가 김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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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서재는 막장이다
김훈 ㅣ 소설가
데뷔
1994년 계간 문학동네,
중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1>
경력
2001년 동인문학상 등
작품
소설<칼의 노래>, <남한산성>, 산문집<바다의 기별>,
장편소설<공무도하> 온라인 연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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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의 이야기
이곳은 도구가 있는 막장입니다
여기는 내 서재라기보다는 막장이에요. 막장. 광부가 탄광 맨 끝까지 들어간 데를 막장이라고 그러잖아요. 광부는 갱도의 가장 깊은 자리인 막장에서 곡괭이를 휘둘러서 석탄을 캐지요. 저는 서재에 책이 별로 없어요. 필요한 책만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신간 서적의 표지나 목차를 보면, 읽어야 될 책인지 아닌지, 시급히 읽어야 할 책인지 미뤄두었다 두어 달 후에 읽어야 할 책인지 판단할 수가 있지요. 이런 판단은 거의 틀린 적이 없어요. 그래서 많은 책을 점을 찍어놓고 모아두었다 한꺼번에 읽고, 그 읽은 책의 대부분을 버리는 것이지요.
특별한 애착을 갖고 그 책들을 쌓아놓거나 분류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내가 필요한 책은 자료나 사전, 일종의 일을 하기 위한 도구에요. 광부의 장비가 곡괭이나 삽, 플래시 그런 것이듯 이 방에는 나의 도구들이 있어요. 여기 있는 책은 몇 번인지 모르겠는데 많이 읽어서, 찾고 싶은 대목은 힘들이지 않고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김훈의 도구, 사전
저는 각종 언어 영어, 독일어, 한문, 국어사전과 우리나라의 여러 법전을 가지고 있지요. 한문 사전을 주로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여가가 있을 때는 한자의 글자를 찾아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책을 많이 읽고, 책과 밀착됨으로써 만들어낼 수 있는 문장이 있겠지만, 나는 한국어로 문장을 쓰려면 외국어, 특히 한문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어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합리적, 과학적이라고는 하지만 독어나 영어, 한문이 갖는 개념적 명석성은 갖추지 못했어요. 우리나라의 문장도 좋은 문장이지요.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고독은 독어로 Einsamkeit 에요. <홀로 있다>라는 수리적 개념이지. 우리말로 '고독'이라면, '쓸쓸해요'라는 정서가 개입되지만, 독어는 정서가 개입하지 않지. 단독자의 모습을 딱 보여주는 거야. 이것은 한국어와는 참 다른 부분이이에요.
독서가 아닌 놀이
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책은 이런 거예요. <소방서>...... 타는 불길 안에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 들어가서 불을 끄고 데리고 나와야 하잖아요. 그게 인간 사회의 마땅한 도리지요. 소방서에는 불길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써 놓은 거예요. 이런 책들은 아무도 안보겠지, 나만 보겠지. 중장비를 어떻게 작동시키는지에 관한 책도 결국은 기계가 이렇게 맞물려서 인간의 노동하는 육체가 어떻게 작업하는지를 써놓은 것이에요. 인간을 이해하려는 방법이죠. 항해술도 있고, 항공기 조정술은 봐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는 이게 독서가 아니고, 그냥 놀이야 놀이. 소설 쓰는 사람이 말이야……
책 속의 길과 세상의 길을 연결시키지 못하면...
자꾸만 사람들이 책을 읽으라, 책을 읽으라 하잖아요. 그게 틀린 말은 아닌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근사록>이라는 책을 보면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 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니 다독이냐 정독이냐, 일 년에 몇 권을 읽느냐, 이런 것은 별 의미 없는 것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것보다도 그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나 자신을 어떻게 개조시키느냐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죠.
책에 의해서 자기 생각이 바뀌거나 개조될 수 없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 없는 거죠. 책은, 우리가 모든 세상과 직접 관계해서 터득하고 경험의 결과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 보조적인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에요. 세상을 아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인 것이지요.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그러는데, 내가 보니까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길은 세상에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책을 읽더라도, 책 속에 있다는 그 길을 세상의 길과 연결을 시켜서, 책 속의 길을 세상의 길로 뻗어 나오게끔 하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무의미한 거라고 생각해요.
책과 그림, 문화를 받아들이는 통로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독서의 가치를 폄하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제가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나는 책을 매우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우리 시대, 내 또래 사람들은 책을 지금 젊은이보다 많이 읽었을 거예요.
그때는 영화도 시원한 게 없고. 컴퓨터도 없었죠. 음악도 뽕짝과 군가가 전부였어요. 그 시대는 가난하고 참 빈곤하고 지금처럼 다양하지 못한 시대였는데, 지금보다 훨씬 좋은 점도 있었어요. 책과 그림(미술) 이외에는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죠. 책과 그림으로 문화와 미의식을 받아들였어요. 이것은 상당히 고급인 인문주의를 받아들였다는 것이거든요. 그것이 우리들의 바탕이 되었다고 봅니다.
<논어>를 읽는 여생
앞으로는 자꾸 새 것을 읽지를 말고 옛날에 읽은 책을 다시 읽으려고 그래요. <장자>, <논어>, <사기> 같은 것을 다시 읽어야 해요. 왜냐하면 내가 여생이 얼마 안 남았잖아. 새 책을 따라가기보다는 고전을 읽으려고 해요.
내 인생의 책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그러는데, 내가 보니까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길은 세상에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책을 읽더라도 책 속에 있다는 그 길과 세상의 길을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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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집해
주희 저
아카넷
2004.06.20
책 상세보기
나는 <근사록>을 늘 보는데, 이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던 책이에요. 평생을 옆에다 놓고 보는 책이지요. 이 책은 그 유교적 사고, 유교적 삶, 유교적 인격의 아름다움을 아주 간결한 글로 잘 설명한 책이지요. 이런 글들을 보면 참.. 세상에서 까불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주희 선생이 이런 이야기를 써놨어요. <집안은 어렵고 천하는 쉽다. 집안은 가깝고 천하는 멀기 때문이다.> 집안 다스리는 게 젤 어렵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집안은 내 가까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이렇게 뻔한 얘기를, 아주 뻔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은 아주 무서운 것이지요. <근사록>은 여러 편저자가 있고, 또 번역자도 여럿이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딱 추천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고,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그 많은 판본을 다 비교하여 읽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읽는 것은 이광호 선생이 역주하신 책인데, 다른 판본도 좋은 점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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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일연 저
리상호 역
까치(까치글방)
199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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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류의 <삼국유사>가 있지만, 이 책은 강운구 선생이 현장 사진을 찍어가지고 만든 책이에요. 이거 정말 열심히 읽었어요. 포스트-잇 붙여놓은 것을 봐봐요. 이 책은 인간의 마음을 써 놓은 책입니다. 정치적인 왕조의 흥망, 계급 사이의 갈등, 고려자기 이런 것이 역사를 이루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인간의 근원적인 조건은 인간의 마음이잖아요. 인간의 마음이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고 한다면 너무나 공허한 얘기죠. <삼국유사>는 역사의 중요한 일부로서 인간의 마음을 써 놓은 거예요. <삼국유사>의 한문을 보세요. 삼국사기는 史자를 쓰는 반면, 삼국유사는 남길 유(遺)에 일 사(事)를 써요. 삼국에서 남은 일이다, 즉 히스토리보다는 삶의 구체성에 접근하고 기술한다는 뜻으로 事을 쓴 거예요. 그것은 곧 이 책은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것이며 정통적인 역사일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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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찰스 로버트 다윈 저
박동현 역
신원문화사
200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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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생명의 거대한 드라마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른 것과 싸워야 되는 거예요. 그런 싸움은 선악이나 도덕을 초월한 것이지요. 생명을 가진 것들이 수 억만년의 시간 속에서 멸망하고 도태하고 다시 변화해 가는 과정을 아주 장엄한 문장으로 썼어요. 문장이 훌륭합니다. 이 책은 무서운 책이에요. 책 한 권이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잖아요. 안 그래요? <근사록>이나 <퇴계록>은 세상을 물리적,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책이 아니에요.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다윈은 이 세계를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시선으로 보고, 모든 것을 이성과 인식의 틀 안에서 설명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지요. 둘은 전혀 다른데, 나는 둘 다 좋아하고 둘 다 긍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나는 우리나라에서 문과 학생들도 과학의 기초를 배웠으면 좋겠어요. 음풍농월만 가르치고 세상을 물리적, 과학적으로 들여다보는 안목이 없다면 그 사고가 반쪽밖에 안 될 것 아니겠어요. 내가 이 책을 안 읽었으면 어떤 인간이 되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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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갯벌
고철환 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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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는 이것이에요. 한국의 갯벌. 우리나라 전 갯벌을 다 조사해서 연구보고서를 낸 엄청난 책입니다. 갯벌에서 전개되는 모든 자연현상, 생명현상을 여기다 써 놓은 것이지요. 예를 들면 조개들이 갯벌에 살잖아요. 조개를 보면 조개 껍질에 금이 있잖아요. 금. 이게 조개의 삼국사기에요. 블랙박스지요. 몇 년도에는 가물었고, 바닷물이 짰고 이게 거기 다 흔적이 남아있는 거예요. 비슷하게는 경기도의 갯벌을 소개한 책도 있는데, 현재 경기도의 갯벌이 개발로 다 없어지고 이 책으로만 남아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네이버 지식백과] 소설가 김훈의 서재 - 김훈의 서재는 막장이다 (지식인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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