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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서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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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서재
김정운의 서재는 지식의 편집실이다
김정운 ㅣ 문화심리학자
소속
명지대학교 인문교양학부 교수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
학력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 석/박사
저서
<노는만큼 성공한다>, <일본열광>,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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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의 이야기
다양한 주제가 합쳐져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공간
저에게 서재는 지식의 편집실이에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새로운 것 없이, 모두 다 기존의 것에서 편집되어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이 서재의 경우에는 관심 있는 주제별로 책들을 나누어서 그에 대한 자료들을 축적하는 분류법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공간적으로도 편집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공간에 관한 책을 보다가 시간에 관한 책을 보고 나면, 그 두 가지 분야가 합쳐져서 공간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편집되어 나오죠. 서재는 이처럼 다양한 편집이 이루어지는 지식의 편집실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읽은 내용을 내가 생산해 낼 때 내 지식이 된다
저는 책을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 책에서 나한테 필요한 부분은 목차를 읽어보면 몇 챕터 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것만 읽으면 됩니다. 시간이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을 하고 기승전결을 갖춰서 책을 쓰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쓴 것들을 주제별로 모아서 책을 내요.
책을 쓰는 과정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드시 그 순서를 따라서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내 스스로 지식을 편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저자의 이 부분, 저 저자의 이 부분을 내 마음대로 가져와서 엮어내고 내 지식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적극적인 독서법이라고 생각을 해요. 책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는 것도 좋고요. 그래서 요즘에 사람들이 블로그에 리뷰를 올리고, 독후감을 올리는 것도 참 좋은 문화라고 생각을 해요.
제 경험상, 내가 읽은 내용을 내가 생산해내는 경험을 할 때, 그게 내 지식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주제와 관련된 서너 가지의 책을 동시에 읽고, 그 내용을 내가 편집해서 내 이야기로 생산해내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책의 내용이 내 것이 되는 것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는 것보다는) 그런 적극적인 독서법이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독서는 가장 행복하고 폼 나는 리츄얼
(책 읽는 게 싫으면)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동영상 강의라든지, 유튜브라든지, 테드닷컴 같은 것들을 봐도 얼마든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요. 다큐멘터리를 봐도 책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책만이 유일하게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는 거라고 얘기하는 건 오만이고, 사기 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나 다른 매체에 비해서 책이라고 하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내면의 경험이 좀 더 풍요로워진다는 거예요. TV라든지, 인터넷 같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게 되면 자극이 나한테 끊임없이 들어오기 때문에 내 스스로 성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요.
그런데 책의 특징은 읽기 싫으면 멈추면 돼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생각이 났을 때 거기다가 내가 쓸 수도 있지요. 책을 읽다가 먼 산을 바라볼 수도 있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내면적으로 성찰의 경험이 훨씬 더 풍요롭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요. 정보 전달만 받으려고 책을 읽는 건 아니거든요. 내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책 읽는 리츄얼이 나는 가장 폼 나는 리츄얼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렇게 책을 펼 때 손에 잡히는 그런 느낌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읽고 있으면 너무너무 행복해요.
현대인들은 위로의 경험이 필요하다
인간의 모든 행복, 기쁨, 슬픔, 괴로움은 모두 인간관계에서 오는 거예요. 그렇게 인간관계들을 겪으면서 지쳐가지만, 거기서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경험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엄청난 위로와 위안의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현대인들이 가장 굶주려 있는 게 위로 받고 싶어하는 거예요. 오죽하면 임재범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라고 하겠어요. 여러분이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땐 거짓말이에요. 누가 나를 위로해줘요,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는다고요. 책을 읽고 있으면 그런 위로 받는 경험들을 해요. 전 그걸 케어 이코노미(care economy)라고 하는데, 현대에는 위로 받는 산업들이 무지하게 많이 발전이 되고 있어요. 옛날에는 가족이라든지 이런 인간관계 속에서 위로 받을 수 있는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거든요. 그래서 그 위로를 돈을 주고 사는 거죠. 예를 들면 상담, 코칭 같은 것들이 다 케어 이코노미에 들어가고, 큰 틀에서는 룸살롱도 하나의 케어 이코노미라고 여겨져요. 갈 데 없는, 위로 받지 못하는 사내들이 돈을 주고 웃음과 따뜻함, 미소를 가짜인 줄 알면서도 사는 거거든요. 뒤에 보이는 그림을 좋아한다고 했는데요.
이 그림은 남아공의 리차드 스캇이라는 작가의 그림이에요. 심리학적으로 남자들이 가슴에 열광하는 이유도 결국은 소통의 부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데에 대한 쓸쓸함, 고독감이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줬던 엄마의 가슴으로의 퇴행으로 나타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 삶 속 행복의 리스트를 작성하라
제가 생각하는 건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물론 목적도 중요하지만 과정으로써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유학시절에 깨달은 사실인데,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학위를 따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고, 학위를 딸 때까지의 모든 시간은 그냥 잃어버리는 시간, 소비하는 시간으로 간주를 해요. 그런데 (그걸 보면서 생각한 것이) 내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그렇게 버리는 건 나중에 너무너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소중한 시간인 유학시절에 내가 즐겁고, 행복하고, 내 청춘을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고민들을 했어요.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직장에 가기 위한 준비시간으로만 생각하면 너무 귀찮고 정신없어요. 그러나 내가 화장실에 가서 앉아있는 행위, 샤워하는 행위, 아침을 먹는 행위, 이런 행위 자체 하나하나가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구체적인 삶의 순간순간들을 느끼는 훈련들을 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고, 일상의 삶에서 재미, 행복의 리스트들을 풍요롭게 갖는 것이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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