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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에 대하여~ 본문
1. 개요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정이 넘치는 그런 학교 말이다.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의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中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가톨릭 신부이며 수도자. 세례명은 요한 세례자. 수단 현지에서의 애칭은 요한(John)과 성씨 이(Lee)의 합성어인 '쫄리'. 수단 아이들이 계속 "존 리", "존 리"하면서 부르는 게 그런 발음으로 굳혀진 듯하다.
1990년대부터 내전 중이었던 수단에 파견, 2001년부터 2008년까지 7년여간 봉사활동을 하며 체류했으며, 이 시기 행한 수단에서의 여러 선행과 공적들로 가톨릭 뿐만 아닌 타 기독교 종파와 타 종교, 무종교인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고 있다.
대중적으로 수단의 슈바이처로 알려져 있으나, 한국 가톨릭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살레시오 수도회를 설립한 성인 돈 보스코(요한 보스코)의 이름을 따 수단의 돈 보스코라 칭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는 슈바이처는 가톨릭이 아니라 개신교 신자, 그것도 목사였으므로 이태석 신부에게 붙이기는 조금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 하지만 돈 보스코 성인이 슈바이처에 비해서 덜 알려진 탓에, '수단의 돈 보스코'라는 호칭은 천주교도 사이에서 주로 통용되고 있다.
살레시오 수도회는 이태석 신부의 소속 수도회이기도 한데, 선종 직전 곁을 지키고 있던 수도회 수사들에게 '어젯밤 꿈에서 돈 보스코가 나를 축복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본인이 소속된 수도회의 설립자에게 인정받은 셈이다.
2. 생애
1962년 | 10월 17일 부산 출생 |
1987년 |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1991년 | 살레시오 수도회 입회 |
1992년 | 광주가톨릭대학교 입학 |
1994년 | 첫 서원[3] |
1997년 | 로마 유학(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 |
2000년 | 종신서원(로마), 부제 서품(로마) |
2001년 | 사제 서품(서울), 아프리카 수단으로 출국 |
2005년 | 제7회 인제인성대상 수상 |
2009년 | 제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수상 |
2010년 | 1월 14일 대장암으로 선종 |
2010년 | 12월 제1회 KBS 감동 대상 수상 |
2011년 | 7월 15일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
2018년 | 11월 20일 남수단 대통령 훈장 추서 |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가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다녔던 송도성당
1962년 10월 17일에 부산에서 출생하였다. 천주교 부산교구 송도본당[4] 출신이다. 여기서 알로이시오 슈월츠 몬시뇰 신부에게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미국인인 알로이시오 신부는 이태석 신부의 스승으로, 훗날 이태석 신부가 톤즈에서 봉사한 것처럼, 6.25 직후 피폐해진 당시 최빈국 한국에서 몸 바쳐 봉사한 인물이다. 학교법인 소년의집학원(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 알로이시오중학교, 부산알로이시오초등학교 등)을 세워 고아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등의 공로를 세워, 부산에서는 성자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홀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특히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음악에도 재능을 보여 어린 시절 성당에서 풍금을 독학으로(!) 익혔다고. 직접 작사, 작곡을 할 정도라고 하니, 공부 잘하는 데다 음악까지 잘하는 보기 드문 인재.
특히 초등학교 시절 성당에서 보여준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5]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고 그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후 중학교 3학년 때 작곡 작사한 성가 <묵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그려내었다. 이 곡은 1998년 수원가톨릭대학교 갓등중창단 첫 번째 앨범 <내 발을 씻기신 예수>에 소개되었다. 여기서 들을 수 있고 가사는 다음과 같다.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만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6] 1981년에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87년 의사 면허를 취득한다. 이후 육군 12사단에서 군의관[7]으로 복무하면서 신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다고 한다. 전역 후인 1991년, 이탈리아인 성 요한 보스코 신부가 설립한 대표적인 자선 수도회인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다시 공부하여 2001년 6월 24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당시 그의 서품식을 집전한 이는 다름아닌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었다. 본 문서의 위에 올라온 유튜브 영상의 1분 10초 부분에도 나온다. 오늘날 한국천주교회의 큰 자랑이자 존경을 받는 두 사제의 놀랄 만한 인연이었던 셈.[8]
보통 사람보다는 늦은 시작이었지만 그의 신앙과 덕행은 남달랐다. 사제서품을 받은 직후 아프리카 케냐로 건너갔다가 얼마 안 되어 더 위험하고 어려운 지역인, 20년 동안 내전이 계속되었던 수단(현 남수단 지역)으로 건너가 의료활동을 시작하였다. 열악한 수단의 환경 속에서도 병원을 손수 만들었고, 나병 혹은 문둥병이라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과 결핵 환자들을 보살피며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을 벌였다. 특히 발가락이 뭉그러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그들의 발에 맞춰 특수 제작한 신발을 선물하기도 했다. 또한 1주일에 1번씩 오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동진료를 하면서 8년을 지냈다. 여기에 내전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받을 미래 세대들을 걱정하며, 손수 학교와 기숙사를 짓고 수학을 가르치기에 이른다. 거기다 아이들을 모아 악단을 만들고 지휘자를 맡기까지 했다. 이때 브라스밴드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당연히 없었기에 스스로 교본을 보고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9]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5장 40절)
위와 같은 성경 구절을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며 의료활동을 해나가던 2008년 10월, 2년마다 한 번씩 들르는 한국에서 휴가차 건강검진을 받던 중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말기 암 선고를 받고도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서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리느라 고생하였다고 한다. 담당 의사에 따르면, 말기암 선고를 받자마자 "톤즈에서 우물 파다 왔어요. 마저 다 해야 하는데…"라며 실의에 빠졌다는데, 본인이 암 판정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니라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계속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으로 보였다고 한다. 판정 직후 인터뷰에도 병명은 숨긴 채로 미소를 띄우며 담담하게 봉사활동 및 지원 호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이후에도 투병 중에 톤즈로 몇 번이고 다시 가려고 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주변에서 말렸다고 한다.[10]
투병 중에도 자선 공연도 하고 각 지역의 성당을 직접 찾아가서 봉사활동과 지원을 호소하였지만, 결국 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35분, "Everything is good."[11]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47세를 일기로 선종하였다.[12] 임종을 지켜본 수녀에 따르면 선종 몇 시간 전부터 의식이 희미해져서 손 하나도 제대로 못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돈 보스코!" 라고 외쳤는데 돈 보스코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살레시오 수도회의 창립자이자 수호성인이다. 수녀는 이태석 신부에게 "돈 보스코 성인이 앞에 보이시냐"고 물었고, 이태석 신부는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 그 다음 손을 들어 모여 있던 살레시오 수도회 수도자들에게 강복을 해준 다음, 위의 유언인 "Everything is good" 을 남기고 선종했다고.
3. 사후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에 복원된 생가와 그 옆에는 이태석신부 기념관이 세워졌다.
2010년 4월 11일 방영된 KBS 스페셜 <수단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와 이를 재편집해 2010년 9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로 한국에 이름이 알려졌다. 사실 그전에도 여러 성당을 돌며 모금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개봉된 후 "그분이 그분이셨구나!"라는 반응을 보인 신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2011년 2월까지도 장기 개봉 중이며 단 몇 개 상영관 개봉 체제에서도 40만이 넘는 관객이 보았다. 자세한 정보는 해당 문서를 참조.
씁쓸한 사실도 있는데, 수단 현지에서 몇몇 한국 사업가들이 이태석 신부로 인하여 높아진 한국의 인지도를 믿고 들어가 여러 가지 사기사건 등을 저지르고 있어, 이태석 신부의 노력과 한국인에 대한 평판을 땅에 떨어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단에서의 사기사건은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따로 다뤄지기도 했다.
2011년 행정안전부에서는 정부포상 국민추천제를 시행하였는데, 이 제도를 통한 첫 번째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이후 정부에서는 매년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2018년까지 최고등급 국민훈장인 무궁화장을 수여 또는 추서받은 사람은 이태석 신부가 유일하였다.[13]
2011년 12월 15일 바티칸 교황청 내 비오 10세 홀에서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울지마 톤즈>가 공식 상영되었으며, 선종 5년이 지나면 시복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울지마 톤즈>를 연출한 구수환 PD가 2012년에 쓴 책인 <울지마 톤즈-그후의 선물>을 보면 여전히 열악한 남수단 내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자를 보면 이태석 신부가 도왔던 현지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우리가 서로 싸우고 죽게 하곤 왜 쫄리[14] 신부님을 데려가느냐"면서 울부짖으며 "그분만큼 우릴 돕던 분이 없어요"라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15] 고인을 잘 알았던 선배 성직자들은 '이룬 것 없고 나이만 먹은 나를 데려가시지 않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고 나이도 젊은 이태석 신부를 먼저 데려가셨다'며 슬퍼했다. 이태석 신부가 자비를 털어가며 운영하던 병원은 이태석 신부와 같이 병원 일을 돕던 다른 한국인 신부가 남아서 하고 있는데 "정말 이태석 신부님이 하던 일을 도저히 못 따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태석 신부의 선종 소식이 알려지고 톤즈를 비롯한 많은 현지 주민들이 이태석 신부를 애도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는데, 워낙에 시국이 불안한 곳이라 시위나 행진 같은 집단행동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음에도 군인이나 민병대원 누구도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그들도 이태석 신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
더불어 이태석 신부를 종교적으로 괜시리 욕하는 이들이 아직도 보이는데, 그는 절대로 그런 찌질이 종교 장사꾼이 아니었다. 생전 가톨릭 신자만이 아닌 무슬림, 토속신앙인, 개신교 신자 가리지 않고 모두 돌보았다. 민병대원도 치료하여 그들이 너무나도 고마워하며 이 병원 근처에는 스스로 전투를 벌이지도, 얼씬거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개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당을 짓기 전에 병원과 학교부터 세워야 하는 걸 거듭 강조한 성직자이다. 고인의 뜻을 기리는 사단법인 이태석 사랑나눔을 봐도 스님도 있고 종교를 초월하여 충분히 존경할 만한 가치가 넘쳐흐르는 사람이다. 물론 이태석 신부는 엄연히 살레시오 수도회에 소속된 사제이며, '종교가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식의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는 '사제이지만'이 아니라 '사제였기에', 종교와 인간이 모순을 가지는 상황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자신의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거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른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2013년 9월 22일 한가위 특선으로 KBS-1에서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브라스 밴드 한국에 오다!>(예고편)가 방영되었는데 바로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처음으로 만든 밴드가 이 브라스 밴드이다.
2016년 8월 KBS 뉴스를 통해 이태석 신부가 지은 학교의 제자들의 근황이 보도되었는데, 이들은 한국에서 의학과 공학을 배우고 있다. 토마스 타반 아콧과 존 마옌 루벤 두 사람은 2018년 1월 15일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태석 신부의 후배가 되었다.
2017년 1월 산티노 뎅씨가 충남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태석 신부 선종 후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으로 한국에 왔고, 2015년 충남대 토목공학과로 편입해서 졸업하였다. # 또, 2018년 12월 21일 토마스 타반 아콧씨가 드디어 졸업하고 정식 의사가 되었다. 아프리카 출신자가 한국 의대를 졸업하여서 의사가 된 건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2019년 1월 존 마옌 씨도 같은 의대를 졸업하고 정식 의사가 되었다. 의사의 길을 택한 두 사람은 수련의 생활을 끝내는 대로 남수단으로 귀국하여 현지 병원을 개원할 예정이다.
2018년 11월 20일 남수단 정부가 이태석 신부에게 대통령 훈장(Medal of the President)을 추서했다. 남수단 정부가 외국인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2019년 8월 아순타 아조크씨가 이화여자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했다.[16] 그녀는 같은 해 11월 이태석 신부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또다시 한국을 찾았으며, 다음해인 2020년 이화여대 공식 블로그에 영화 부활의 개봉을 맞아 진행된 그녀와의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2019년 12월 24일 토마스 타반 아콧씨가 KBS 아침마당에 유명일 사무엘 신부[17]와 동반출연해 이태석 신부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2020년 1월 9일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를 맞아 울지마 톤즈2 : 슈크란 바바가 개봉했다.
2020년 2월 그의 제자 존 마옌 루벤(1986년생) 이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2020년 7월 9일 사는 곳이 다르며 의사, 약사, 공무원, 언론인 등이 된 제자 70명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영화 <부활>이 개봉됐다. <울지마 톤즈>의 후속작이다. #1 #2
2021년 6월 16일 토마스 타반 아콧씨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으로 또다시 한국방송에 출연해 다시 한번 한국 시청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4. 저서 및 작품
- 생활성가 - "묵상" (성 바오로 출판사) 1998년
- 자서전 -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쫄리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생활성서사) 2009년
- 자서전 -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증보판" (생활성서사) 2010년
- 강론집 - "당신의 이름은 사랑(톤즈의 돈 보스코 이태석 신부 영성의 메시지)" (다른우리) 2011년
- 만화 - "내친구 쫄리 신부님 1" (생활성서사) 2011
- 다큐멘터리 - "울지마 톤즈" 2010년
- 영화 - "울지마 톤즈 2: 슈크란 바바" 2020년
- 영화 - "부활" 2020년
[1] 아버지께서는 이태석 신부가 초등학교 다닐 적 돌아가셨다고 한다[2] 10남매중 9째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그의 형 이태영(세례명 : 마리요셉) 또한 성직자로, 이태석신부 사후에 만들어진 이태석사랑나눔재단의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으로, 지난 2019년에 선종. 현재는 이태영 신부의 뒤를 이어 울지마 톤즈 시리즈와 영화 부활(2020)로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여러차례 다룬바 있는 구수환 감독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3] 수도자로 살겠다는 약속.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삼덕(福音三德)을 서약한다. 자세한 것은 수도자 항목 참조.[4] 부산관광고등학교와 송도중학교 인근에 위치. 성당 근처에는 이태석 신부의 생가가 복원되어, 여러 사진과 유물과 영상이 전시되어 있으며 관광객들이 간간이 방문햐다.[5] 성 다미아노 신부라고도 한다. 하와이의 한센병 환자를 위해 사목활동을 하다 결국 한센병에 걸려 1889년 선종했으며,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2009년 시성되어 한센병 환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6]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시행 이후다. 1974년 서울과 부산에 전국 최초로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가 적용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부산고등학교와 함께 부산의 일류 명문 고등학교였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정도므로...[7] 행군 훈련 끝날 때마다 발 다친 병사들이 많아 고생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웬만한 육군 군의관들에겐 죄다 해당되는 사항이다.[8]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불과 1년 차이로 선종했다. 2009년 2월에 김수환 추기경이 노환으로, 이듬해인 2010년 1월에는 이태석 신부가 암투병 끝에 숨을 거둔 것.[9] 아이들은 브라스밴드에 큰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이태석 신부에게 빨리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고 싶다고 하자, ‘먼저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단다.’ 라고 말한 일화도 있다.[10] 이를 두고 "만약 자신의 몸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하고 계속 톤즈에서 봉사를 했다면 오히려 건강이 악화되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간혹 나온다. 아주 적은 사례이긴 하지만, 이런 치명적인 중병을 품고도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의외로 오래 사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11]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다." 혹은 "모든 것이 다 좋다."는 의미로 해석된다.[12] 나중에 남수단을 취재한 <울지마 톤즈 그 후 이야기>라는 책자에서 말라리아로 다 죽어가는 현지인 환자를 본 한국인 의사가 "이태석 신부님 마지막 모습이 바로 저랬습니다..." 이라며 병명은 다르지만 삐쩍 마른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했다고 회고하는 게 나온다.[13] 2019년 이국종 교수가 2번째 무궁화장 수훈자로 선정되었다.[14] 이태석 신부의 영어 이름이 요한을 나타내는 존, 즉 존 리였는데, 존 리라는 이름이 쫄리로 불리게 된 것이다.[15] 톤즈 마을 주민들은 눈물을 보이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는데, 이태석 신부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얼마나 톤즈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를 따랐는지 알 수 있는 부분.[16] 이태석 신부 사후에 개봉한 영화 부활(2020)에 그녀의 졸업식 모습이 공개되기도 하였다.[17] 이태석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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